다자키쓰쿠루의 자아 찾기정도가 부제가 될수 있을까?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담담하고 안정적이고 규칙적이고 또 사려깊고 여성스럽고
실제 하루키의 모습이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 인생은 복잡한 악보같다고 쓰쿠르는 생각했다.
16분 음표와 32분 음표. 기묘한 수많은 기호.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시들로 가득 차있다.
그것을 올바르게 해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설령 올바르게 해독했다 하더라도 또한 그것을 올바른 음으로 바꿔냈다 하더라도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사람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리란 보장도 없다. ]

쓰쿠루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근본적 문제에 접근을 시도한다.
그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타인의 평가가 얼마나 다른지도 알게 되면서 색채, 개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그에게 조금씩 그에 맞는 색채가 입혀지게 된다.
쓰쿠루와 같은 일을 나역시 겪어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타의로 인생에 있어서 밤바다에 던져진 느낌.
배에 있는 사람들이 빠져있는 나와 멀어지는 느낌.
설령 내가 부르짖는다 할지언정 나를 도와 줄 수 있을까란 절망감.
쓰쿠루는 그런 강박에 수영을 하기도 하지만 쓰쿠루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 나약하지 않은 존재임이 확실하다.
쓰쿠루의 색은 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여러 색이 조화로울 수 있는 힘을 가진 또 다른 영역이 있는 거니까.
정작 본인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해 늘 자존감이 낮았지만..
또한 그 '순례'를 통해 자신의 욕망에 좀 더 솔직한 사람이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위해 '순례'를 하기로 한 순간부터가 이미 달라진거였을지도.

어쩌면 인생은 자신의 색채를 만들어가고 그 색채를 알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굳이 내 색이 다른 사람과 다르거나 약하다고 위축되거나 닮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각자의 복잡한 악보를 본인의 색에 맞게 해석하고 올바른 음을 내는데 집중하면 되겠다.
그걸 듣는 다른 이들의 반응또한 신경쓸 필요도 없다.
그들은 나만큼 내 악보에 관심도 애정도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있어서인지 마지막의 쓰쿠루의 꿈은 참 멋있는 장면이었다.
색채가 없는 (흰색과 검은 색만 있는) 세상에서 굉장히 복잡한 악보를 보며 연주하는 쓰쿠루.
거장만이 발휘할 수 있을 복잡한 기교와 지극히 아름답고 성찰적인 대단한 연주.
하지만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분해하는 청중들.
아마도 연주하고 있는 쓰쿠루의 악보를 넘겨주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사라였을거라 추측해본다.


왜 하이다는 찾지 않았을까?
하이다가 사라진 이유가 궁금했는데...
하이다와 쓰쿠루의 대화는 진심 상쾌했건만...


AND